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8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을 방문,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을 가졌다. 미국 국무장관이 베이징을 찾은 것은 2018년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 이후 5년 만이다. 특히 조 바이든 행정부 고위급 인사가 베이징을 직접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측은 솔직하고 실질적인이며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다는 공식 입장을, 중국 측은 양국 중요 문제에 대해 깊이 있고 건설적인 소통이 이뤄졌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양측의 입장은 서로 조금씩 달랐지만 회담 결과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이던 미국과 중국이 이번 회담에서 모종의 합의를 이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적어도 대만 문제에 대해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5년 만에 만난 미중 외교 수장 = 미 국무부는 이날 회담 직후 설명을 통해 블링컨 장관이 회담에서 오해와 오판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외교적 소통 채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은 미국민의 이익과 가치를 항상 옹호하고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세상을 위한 우리(미국)의 비전을 진전시키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와 협력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밀러 대변인을 설명했다.
미 국무부는 이어 블링컨 장관이 친 외교부장을 워싱턴 DC로 초청했으며 양측은 친 부장의 워싱턴 방문 일정을 조율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중국 외교부는 쌍방이 장시간에 걸쳐 중미 관계 전반과 관련된 중요 문제에 대해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쌍방이 발리 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도달한 중요한 공감대를 공동으로 이행하고 이견을 효과적으로 관리 통제하며 대화와 교류, 협력을 촉진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블링컨 장관의 친 부장 워싱턴 초정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미국을 방문한 용의가 있다고 화답했다.
◆정치 공학계산기 두드린 미국 =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경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6월 금리를 동결했지만 연내 2차례 추가 인상을 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인플레이션(물가) 관리가 여전히 쉽지 않다. 경제 성장률도 올해 1%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내년 선거엔 악재다.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도 성장률이 둔화되 가능성이 큰 만큼 올 하반기 적절한 조치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압박 차원에서 부과한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의 관세 인하는 미국 물가에 긍정적이다. 결국 관세를 인하하려면 명분이 필요하고, 그 명분을 찾기 위해 블링컨이 방중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달 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베이징 방중 당시 이 같은 분위기가 이미 읽혔다. 머스크가 메신저로 중국을 사전 방문, 중국 측 분위기를 떠봤다는 해석이 이달 초부터 나왔다.
반도체 등 '칩4'동맹을 통해 중국의 미래 성장 발목에 족쇄를 채운 만큼 비첨단 부문에 대한 압박을 풀어도 큰 문제가 없다는 계산도 이미 선 것으로 보인다.
◆중국 핵심이익은 절대 No = 중국이 미국의 대선 일정을 모를 리 없다. 중국 지도부가 2024년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한 조 바이든 대통령을 궁지로 모는 것보다 이번 기회에 대만 등 중국의 핵심이익을 우선 재차 다짐 받는 게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과 수교 당시 '하나의 중국 원칙(Principle)'을 인정했지만 국제 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가면서 '하나의 중국 정책(Policy)'이라는 외교 전략을 통해 중국을 압박해 왔다. 대만 문제는 중국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지만 역린이기도 하다. 미국 등 서방 진영은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중국 정부가 약속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바뀔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홍콩이다. 중국은 일국양제라면서도 은근슬쩍 홍콩을 일국일제(한 국가 일 체제)로 바꾸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9일 지면을 통해 블링컨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을 소개하면서 친 부장이 대만 문제를 포함한 중국의 핵심 이익과 중대한 관심사에 대해 분명한 요구를 했다고 보도했다. 관영 환구시보는 미중 관계에 대해 양국이 무역, 국가안보, 기술 등의 현안에서 대립하고 있고, 미국의 정치군사적 도발 행위가 반복되면서 대만해협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양국 갈등의 책임이 미국 측에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양국 관계가 앞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하이둥 중국 외교학원 교수는 이번 회담 결과에 대해 "앞으로 몇 달간 양국 간 상호작용을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회담이었다"라고 평가하면서도 "미국이 편향되고 극단적인 정책, 미국의 이데올로기 중심의 정치가 양국 관계를 악화시킨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역시 경기회복이 더딘 만큼 미국이 내민 손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중국이 대만 문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중국 지도부의 자존심 문제일 뿐 중국 경제가 올해 5% 이상 성장하기 위해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
한편 시진핑 주석이 오는 11월 예정된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 바이든 대통령과 만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미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 양국 정상이 만나 경제적 협력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다. 따라서 친 부장의 미국 답방이 10월쯤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