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전격 강등했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것은 2011년 8월 이후 12년 만이다.
피치는 1일(현지시간) 뉴욕증시가 마감된 직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하향 조정했다. 피치는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이유로 미국의 재정 악화와 국가 채무 부담 등을 꼽았다. 또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놓고 미 정치권이 마지막 순간에서야 해결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거버넌스 문제도 갈등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피치는 그러면서 올 4분기와 2024년 1분기 미국 경제가 완만한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재연된 미국의 부채 문제
미국은 기축통화국이다. 달러를 찍어 전 세계에 공급하는 국가다.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달러를 찍거나 국채를 발행, 전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문제는 국가 채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미중 갈등과 세계 경제 둔화로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도 그 어느 때보다 낮다.
2011년과 비슷하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2011년 8월 5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췄다. S&P는 당시 미 의회와 미국 행정부가 합의한 재정 건전화 계획이 미국 정부의 부채 수준을 안정화시키는데 충분하지 못했고, 중장기적으로 부채를 안정시킬 포괄적 계획도 만들지 못했다며 강등 배경을 설명했다. 이는 재정감축 계획의 미흡함과 동시에 계획의 신뢰성이 낮다는 뜻이다.
무디스도 당시 재정적자를 줄이지 않을 경우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한 바 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와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증가한 미국의 부채에 대해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2010년 말부터 국가신용등급 강등 시그널을 수차례 보낸 바 있다.
◆흔들리는 달러 위상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하향 조정은 2번째다. 지금 당장 국가부도가 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신용이 떨어졌다는 점에서 생채기가 나기에 충분하다.
우선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미국 국채의 신뢰성이 흔들리게 됐다. 또 80년 이상 지속해온 달러 기축통화 체제에도 흠집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번 피치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하향 조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피치가 미 의회와 행정부의 반복되는 부채한도 처리 문제를 언급한 점을 뼈아픈 대목이다. 이는 미국의 정치력에 대한 지적이고, 2011년 당시와 비슷하다.
가뜩이나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정치권이 스스로 달러 체제의 틈을 보였다는 지적도 받을 수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지난달 6일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중국 매체들은 옐런 장관이 미국 국채 문제를 중국 당국과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한 바 있다. 큰 손 중국이 미 국채를 인수해야 미국 재정의 숨통이 트인다는 것이다.
중국 매체들은 옐런 장관 방문 당시 미국은 부채(국채) 증가와 인플레이션 억제하기 위해 줄타기를 하고 있으며, 이러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측이 중국의 미 국채 보유 등에 대해 협조를 구했을 것이라는 게 중국 측의 분석이었다.
중국 경제 전문 매체 제일재경은 피치 발표 직후 미국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3.7%에서 올해 6.3%로 증가할 것이며 이는 미국의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달러 패권 약화 불가피
이번 미국 국가신용등급 갈등으로 80년 이상 지속돼 온 기축 통화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앞으로 '달러=안전자산'이라는 공식에 금이 갔다는 평가도 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축통화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분산 투자 측면에서 달러 외 유로화, 엔화, 위안화 등 여타국가 통화의 거래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세계은행은 2011년 미국 국가신용등급 하향 조정 당시 미국의 달러화가 2025년 내에 기축통화로서의 독점적 지배력을 잃고 유로화와 위안화 등 달러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이번 미국 국가신용등급 하향 조정으로 중국의 흑심이 더욱 노골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자국 통화인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10년 넘게 공을 들이고 있다. 'G2' 국가임에도 불구, 중국 위안화는 국제사회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중국 정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뒷받침되지 못한 결과이지만 중국은 여전히 위안화 국제화의 꿈을 접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