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비자물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2년 5개월 만이다. 중국 경제가 물가는 하락하는데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디플레이션(Deflation)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급감하고 있어 자칫 우리 경제가 '상저하저'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7월 중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0.3% 하락했다. 중국의 월별 CPI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2021년 2월(마이너스 0.2%) 이후 2년 5개월 만이다. 중국의 월간 CPI는 지난 1월 2.1%를 나타낸 이후 줄곧 하락세를 보여왔다.

◆中 경제 자칫 장기 불황 늪에 빠질 수도
생산자물가지수(PPI)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지난달 PPI는 전년 동월 대비 4.4% 하락했다. 10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다. 도매가격인 PPI는 일반 소비자 물가의 선행지표다. PPI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앞으로 CPI가 더 낮아질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물건값이 싸지는데도 불구하고 소비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목표는 '5% 안팎'이다. 중국 경제에서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70%가 넘는다. 내수가 살아나지 않으면 올해 목표치 달성이 불가능하다.
수출과 수입 즉 교역에도 이상 징후가 확인되고 있다. 지난 8일 중국 해관총서(세관)가 공개한 7월 수출액은 2817억6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4.5%나 감소했다. 수입도 크게 감소했다. 7월 중국 수입액은 2011억6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2.4%나 줄었다. 수입이 감소했다는 것은 성장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7월 중국 무역을 형태별로 보면 일반무역과 가공무역의 실적이 저조했다. 일반무역은 전년 동기 대비 13.7% 감소한 1843억7210만 달러에 그쳤고, 수입은 11.7% 줄어든 1302억6360만 달러에 불과했다.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기준선 50을 밑돌고 있다. 7월 제조업 PMI는 49.3으로 4개월 연속 50 이하다. 비제조업 PMI은 51.5로 50을 웃돌고 있지만 지난 2월(58.2)을 정점으로 5개월 연속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中 내수 총동원령
중국 경제에서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70%가 넘는다.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닉네임 덕분에 중국 경제를 수출형 경제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경제는 14억 인구를 바탕으로 한 내수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14억 중국인의 지갑이 닫혀 있다는 것이다. 저물가임에도 좀처럼 지갑이 열리지 않고 있다. 이날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CPI가 단적인 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달 18일 가계 소비 진작을 위한 11개 정책을 발표했다. 중국 경제를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공업정보화부 등 13개 부처가 함께 정책을 마련했다. 정책의 핵심은 내수 진작이다. 친환경 가구 및 전자제품 등을 구매 시 지원하고 소비를 장려하기로 했다. 주택 역시 지원안에 포함됐다.
또 은행 등 금융회사는 주택 구입 관련 대출 상품에 대한 신용 지원을 강화하고, 관련 대출 금리와 만기를 합리적인 수준에서 설정하라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이달 중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인민은행은 지난 6월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와 5년 만기 LPR 금리를 각각 0.1%포인트 인하한 바 있다. 부동산 등 내수가 여전히 잠자고 있는 만큼 추가 금리 인하 결정이 나올 수 있다. 또 지급준비율(RRR) 인하도 검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LPR가 인하되면 시중에 돈이 더 풀리게 되고, RRR가 인하되면 금융권의 가용 현금이 늘어나게 된다. 중국 당국이 현재의 상황을 심각하게 본다면 LPR와 RRR 모두 인하할 수도 있다.
중국의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면서 14억 인민이 지출을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韓 경제도 빨간불
중국과의 교역이 크게 감소했지만 우리 경제의 대중국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중국 경제가 어렵다면 한국 경제 성장률도 장담하기 어렵다.
실제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는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4%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우리 경제가 '상저하고'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과 배치되는 숫자다.
중국 경제가 반등하지 못할 경우 대중국 수출 감소 폭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교역량이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7월 해관총서가 공개한 국가별 교역 현황에서 수입이 가장 많이 준 국가는 한국이었다.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전년 대비 무려 24.7% 줄어든 898억2000만 달러에 그쳤다.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줄었다는 것은 중간재 수입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중국 경제가 어렵다는 뜻이며, 한편으로는 중국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은 한국이 아닌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중간재를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수출 다각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이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중국을 '공장(팩토리)'이 아닌 '시장(마켓)'으로 보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