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가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사 마이크론을 상대로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 수세였던 중국 기업이 미국 기업을 상대로 특허 소송을 냈다는 점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소송과 관련 중국 매체들은 미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중국 반도체 기업의 반격이라고 규정하면서 획기적인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다.
13일 제일재경 등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YMTC는 지난 9일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에 자사의 미국 특허 8건을 마이크론과 마이크론CPG(Consumer Products Group, 마이크론 100% 자회사)가 침해했다면서 소송을 냈다.
YMTC는 이번 소송과 관련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의 특허 기술을 무단으로 광범위하게 사용했다"라고 밝혔다.
YMTC가 특허 침해를 주장하는 제품에는 96단, 128단, 176단, 232단 3D 낸드 플래시 메모리가 포함돼 있다고 제일재경은 전했다.
YMTC는 소장에서 마이크론이 자사의 특허 기술을 사용, 자사 3D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시장에서 퇴출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낸드 플래시 메모리는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등 저장장치와 휴대전화, 서버, PC 등에 쓰이며, 올해 2분기 기준 삼성전자가 시장 점유율 31.1%를 점하고 있는 품목이다. 또 일본 키오시아(19.6%), SK하이닉스(17.8%), 웨스턴디지털(14.7%), 마이크론(13%) 등이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생산하고 있다.
◆YMTC, 美 마이크론 상대로 특허 소송 배경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대한 미국의 중국 압박 정책으로 중국 반도체 산업이 수세에 몰려 있다. 중국은 반도체 산업을 육성, 단순 제조국가에서 첨단 산업 국가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미국은 압박은 말 그대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YMTC의 주장처럼 마이크론이 특허를 침해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따라서 이번 소송 제기는 상징성에 의미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 내부에선 이번 소송을 역사적(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관영 환구시보는 이번 소송과 관련해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미국 기업을 상대로 공식적인 반격에 나선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했다. 중국 반도체 기업이 전 미국의 제재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라고 환구시보는 의미를 부여했다.
왕펑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YMTC의 이번 소송 제기는 중국 기업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고 정상적인 경쟁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는 중국 메모리 칩 역량이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덧붙였다.
마지화 중국 반도체 산업 전문가는 "중국 반도체 산업이 연구개발(R&D)에서 제조에 이르기까지 전 산업에 거쳐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라며 "중국 기업 스스로 법적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공식적인 반격을 시작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중 정상회담 앞두고 계산된 소송
이번 소송이 계산된 소송이라는 말도 나온다. 시 주석은 오는 15일(현시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갖는다. 두 정상이 마주하는 것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1년만이다. 특히 시 주석은 2017년 4월 이후 6년 7개월 만에 미국을 방문한다.
무역 분쟁에서 시작된 양국 갈등의 골이 깊은 상황에서 두 정상이 회동한다는 점에서 전 세계가 회담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중국 측은 미국의 압박 특히 반도체 산업에 대한 미국 주도의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첨단 산업만큼은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펴고 있다.
따라서 이번 YMTC의 마이크론 특허 소송 제기는 시 주석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소송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중국도 충분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정상회담에서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얻겠다는 정치적 속셈이 담겼다는 것이다. 소송 결과와 상관없이 중국도 충분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일종의 글로벌 여론전을 펴겠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지난 8월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7나노 칩이 장착된 화웨이 '메이트 60 시리즈'를 출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첨단 칩이 장착된 스마트폰을 만들었다는 일종의 깜짝 쇼를 연출했다는 평가가 당시 전 세계 여론을 탔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18nm(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14nm 이하 로직 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의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한 바 있고 12월에는 YMTC 등 중국 기업 36개를 수출통제 명단에 올렸다.
환구시보는 양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미 정상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면서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에게 이번 회담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앞서 허리펑 중국 부총리와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디커플링'에 반대한다는 합의를 했다고 전했다.
환구시보는 중미 양국이 정상회담 사전에 어느 정도 합의를 했지만 여전히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 징벌적 관세 철폐 등에 대해선 미흡하다고 지적했다.